명품백과 내란, 그 이면의 사회 심리
세상에는 늘 두 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요즘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명품백을 받고도 출처를 몰랐다는 증언, 계엄이 정당했다는 주장, 재판부를 향한 협박성 발언까지. 뉴스를 보면 볼수록 단순한 사건 이상의 무엇이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은 이 이야기를 꺼내 보려고 한다.

사실과 인식 사이에는 때로 큰 간극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 재판에서 로저 비비에 백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출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진술은 법리적으로는 선물 수수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쟁점이 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더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하는 문제다.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그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상황을 재해석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비단 유명 인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변명을 하며 살아간다. 예컨대, 직장에서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자신의 잘못보다는 팀원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봉사 편향’이라고 부른다. 성공은 자신의 능력 덕분으로, 실패는 외부 탓으로 돌리는 경향 말이다. 이런 편향은 우리가 진실을 직시하는 것을 방해하고, 때로는 더 큰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내란 혐의 법정에서 피고인 측이 외부에서 파견된 특검을 언급하며 재판의 정당성 자체를 의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동아일보 기사는 이런 발언이 법정 기록에 고스란히 남았다고 전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우리는 왜 이토록 쉽게 타인을 의심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받아들이는가?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경향 말이다. 법정이라는 극한의 장면에서조차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실제로 2015년 미국 심리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일치하는 뉴스를 접할 때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적 일치감에 더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의’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정의는 법원에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공정함을 지키려는 노력이 모여 사회 전체의 정의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사업을 하다 보면 계약서 한 장에도 공정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상대방과의 신뢰가 무너지면 어떤 문서도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마치 음주운전전문변호사와 같은 전문가가 사건의 쟁점을 정확히 짚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전문가는 단순히 법률 조항을 암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잡한 상황 속에서 핵심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다. 그들의 조언은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실마리를 찾게 해준다.
물론 법적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이미 문제가 생겼다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냉정하게 사실을 정리하고 적절한 조언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실수는 혼자서 해결하려는 것이다. 특히 복잡한 사건일수록 전문가의 시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 지인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보험사와 직접 협상하다가 불리한 조건에 서명할 뻔했다. 다행히 주변의 권유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법률 문제는 혼자 감당하기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돌아보면, 이번 사건들은 단순한 법적 다툼을 넘어 사회의 신뢰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명품백을 받은 사람은 왜 출처를 몰랐다고 말했을까? 계엄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떤 논리로 그런 결론에 도달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법원의 판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신뢰를 ‘복잡성을 줄이는 메커니즘’이라고 정의했다. 신뢰가 없다면 우리는 매 순간 모든 가능성을 의심해야 하므로 사회가 마비될 것이다. 따라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 문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진실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편견을 의심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조금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이 생각을 가슴에 품고 하루를 시작한다.